‘서핑 트립을 위해 10년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퇴사 사유를 상세히 적으라는 문서엔 “세계 서핑 트립”이란 여섯 단어만을 쓴 채로 인사팀에 제출했다.’ 


6e166c88cf14533bc39edf0d75fabdbd_1682735105_1292.jpeg


이 두 문장이 영화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면 그 뒤엔 어떤 씬이 이어질까. 음.. 아무래도 푸른 바다가 보이는 항공샷이 좋겠다. 해변을 따라 시원하게 뚫려있는 길. 서핑 보드를 싣고 달려가는 벤의 앞자리엔 창문을 열고 바람 을 맞으며 설레는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아! 이건 어떨까.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바다를 향해 달려가 첨벙 뛰어드는 모습이 타이트한 앵글에 담겨 역동적으로 보인다. 실제론 늘 차분하게 걸어 입수하지만 이런 영상 에선 뛰어야 제맛이다. 다가오는 파도에 멋진 덕다이브를 보여주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가야 한다. 파도에 말려 얼굴을 손으로 벅벅 문지르는 장면은 포함되지 않는다. 배경 음악으론 통기타 사운드가 매력적인 포크송이 깔린다. 데우스 서핑 영상에서 자주 듣던 느낌적 느낌. 한 영화의 오프닝으로 적당하다. 그 뒤엔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이 분명하다. 


6e166c88cf14533bc39edf0d75fabdbd_1682735128_8399.jpeg
 

사실 이것은 30살이 되던 해 서핑 트립 계획을 세웠던 순간부터 머릿속에 그려온 그림이다. 5년을 넘게 상상했 더니 이미 일어난 일처럼 선명하다. 추측건대 나의 여행 소식을 들은 이들도 같은 그림을 떠올렸을 것이다. ‘곧 발리와 서핑 트립 사진이 잔뜩 올라오겠군. 부러워서 어쩌나…’라며 조금은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 이다.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나의 인스타는 한참이나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예고편을 동네방네 때려놓고 개봉 않 는 영화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지내냐며 연락을 해온다. 나의 답은 늘 같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현실로 이뤄지겠어요” 


<어떤 계획은 그럴싸해 보인다 매우 처맞기 전까진> 딱 나를 위한 문장이다. 상상만 해오던 계획을 실천으로 옮 기고 나서야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음을 깨달았다. 인간이 살고 있는 삶이란 편집본이 아닌 라이브 스트리밍이라 는 것. 그렇기에 우린 장면과 장면 사이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퇴사 후 여행’이란 심플한 계획을 해내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서울 짐을 싸 제주로 옮겨야 하고 친구들 을 만나 석별의 정을 나누거나 발리에서 연습할 훌라를 잔뜩 배우고 틈새 프리랜서 일을 하며 남편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직장을 다닐 때 보다 일찍 눈을 뜨고 늦게 눈을 감았다. 무리한 스케줄로 컨디션이 나빠 져 두 번이나 병원을 찾았으며 그중 한 번은 걷기도 힘들 만큼 아팠다. 마침 근처에 병원이 있어 기어들어갈 수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 결과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파도를 타지 못 하는 중이다. 물론 곧 발리 파도를 실컷 탈 수 있단 사실에 안일했던 것도 인정한다. (꺼져버린 당신의 부러움을 다시 자극하자면 지금 이 글은 발리에 도착한 첫날 마무리 중이다) 


6e166c88cf14533bc39edf0d75fabdbd_1682735746_0628.jpeg
 

나를 병들게 한 바쁨의 요소 중 서핑 트립을 위한 준비는 생각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인데 이렇게까지 특별한 준비가 없어도 괜찮은 건지 걱정될 정도였다. 사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서 핑샵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그 내용들이 정보로써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첫 장기 발리 트립을 생각하는 서퍼를 위해 조금 정리해 보았다. 


항공편 : 출국 2달 전 예매하여 대한항공 직항 125만원 정도에서 끊었다. 비행깃값은 대체 언제 내리는 걸까? 

서핑샵 초밥 시절부터 꾸준히 다니는 샵이 있어 선택이 쉬웠다. 발리에 단골 샵이 있다는 건 심신에 큰 힘이 된다.  

비자 : 업체를 통해 6개월 비즈니스 비자를 끊었다. 서핑샵 사장님이 해주어 나는 크게 한 일이 없다. 

입국 관련 : 온라인 세관 신고 작성, 코로나 접종 증명서(영문) 

여행자 보험 : ‘어시스트 카드’로 가입했다.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병원을 예약해 주고 병원비도 바로 지불 해 준다. 긴급 통역도 해주며 의료진이 상담까지 해준다니 든든하다. 

환전 : 한국에서 미리 환전한다면 100달러로 환전하는 것이 루피아 환전 시 유리하다. 나는 일부 금액만 한국에서 환전했고 나머지는 ‘트레블 월렛’ 실물 카드를 통해 인출할 것이다. ‘트레블 월렛’은 앱 충전 방 식으로 환전 수수료도 없고 신용카드처럼 사용도 가능해서 사용이 편리하다. 

비상약 : 일반적인 비상약 + 메디폼(발리에 없다. 많이 사 오는 것이 좋다) + 알콜스왑(바이크를 타다보면 소지품이 먼지를 많이 맞게 된다. 휴대폰 등 물건을 닦기에도 필요하다) + 영양제 

발리 유심 : 귀찮아서 늘 공항에서 산다. 클룩을 통해 미리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 

한국 유심 : 이전에 쓰던 휴대폰을 가져와 넣었다. 본인 인증 등 문자 수신을 위해 가장 저렴한 요금제로 바꾸고 로밍은 하지 않은 채로 유지하기로 했다. 


6e166c88cf14533bc39edf0d75fabdbd_1682735466_1623.jpg
<발리에서 지내게 될 숙소>


숙소 : 월세를 구했다. 서핑샵 사장님이 알아봐 주어 예약했고 월세는 5.5주따다. (현재 기준 한화 50만 원 정도) 

도착 후 이동 : 서핑샵에서 픽업을 오기로 했다. 만약 픽업 올 사람이 없다면 그랩 존에서 그랩을 부르면 된다. (그랩은 한국에서 미리 설치하고 가야 한다) 

지역 : 꾸따에 머물 예정이다. 건기엔 주로 꾸따에서 서핑하고 우기엔 트립을 다닌다. 

서핑 용품 : 선크림, 왁스 등등 발리 가면 구입하려고 아무것도 들고 가지 않는다. 유일하게 챙긴 것은 만큼 많은 수영복. 하지만 발리에서 구입하겠지. 수영복 포기 못해… 


6e166c88cf14533bc39edf0d75fabdbd_1682735226_6456.jpeg


발리로 넘어오기 한국이 너무 추웠기 때문일까. 건기 발리의 날씨는 덥다기 보단 드디어 따뜻한 곳에 도착했 느낌이 든다. 화창하고 깔끔하다. 며칠 휴식 서핑을 시작하기로 했다. 앞으로 나는 어떤 파도를 타게 될까. 



사진 : 현혜원

 FLAT & Editor 2023, 무단 전재  수집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