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서핑의 시작, 파도잡기의 높은 문턱

우리는 왜 ‘파도를 잡는다(catching waves)’라고 할까? ‘올라탄다’도 아니고, ‘뛰어오른다’도 아닌 ‘잡는다’라니. 모두에게 넘기 어려운 벽이었던, 그리고 지금도 가끔 고민거리일지 모를 웨이브 캐치, 즉 파도 잡기에 대한 이야기를, 말장난 같지만, 이 ‘잡는다’라는 표현에 대한 고찰로 시작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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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는다’는 행위가 연상시키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호랑이가 토끼를 잡거나, 경찰이 도둑을 잡는 장면이 떠오른다면, 이 ‘파도를 잡는’ 과정에 대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서핑을 배우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만한 튜토리얼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다시 말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구전으로 전해지며 서핑을 배워야 했던 시기에는, 많은 입문자들이 호랑이가 토끼를 쫓듯, 경찰이 도망가는 도둑을 쫓듯, 파도와 숨 막히는, 아니 숨이 턱에 차는 추격전을 한바탕 치르고 나서야 가까스로 파도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라인업 저 먼 곳에서부터 눈부신 속도로 회전하는 양팔이 만들어내는 물보라와 함께 쾌속정처럼 질주하는 서프보드, 그리고 마침내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기적을 보듯 보드 위에 우뚝 서서 유유히 멀어지는 선배 서퍼의 뒷모습을 동경과 신앙심(?)으로 가득한 눈으로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이 당시의 상식은 '파도는 패들로 잡는 것'이었다. 토끼가 지쳐 주저앉을 때까지. 도둑이 막다른 골목에서 도망갈 의지를 상실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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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났다. 이제 ‘잡는다’라는 표현으로 다른 장면을 떠올려보자. 친구들과 모임을 마치고 택시를 ‘잡는’ 장면 정도면 어떨까. 택시가 많이 지나다녀서 잡기 쉬운 길목을 먼저 찾고, 다른 경쟁자가 타지 않은 적당한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와 방향이 맞지 않거나, 예약이 잡힌 택시는 탈 수 없으니, 다음 차를 향해 다시 시도해 본다. 기사님한테 떼를 써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혹시 이 과정에서 추격하는 호랑이와 도망가는 토끼 사이의 긴장감이 느껴지는가?  


파도는 호랑이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우리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도망가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파도는 그저 스스로의 속도로 우리 곁을 무신경하게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적당한 위치에서 방향과 타이밍이 맞으면 타고, 내 위치와 방향이 맞지 않으면 다른 택시를 잡듯, 우리는 각자의 위치와 타이밍에서 탈 수 있는 파도를 타면 된다.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앞으로의 서핑에 작다고 할 수 없는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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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파도를 잡는 시도가 실패했을 때 ‘패들의 부족’을 원인으로 분석하고, 당연히 “패들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을 해결책으로 도출하였다. ‘호랑이야, 조금만 더 열심히 달렸으면 저 토끼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와 같은 문제 분석과 해결책으로는 우리는 점점 더 패들을 열심히 해야 하며,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늘수록 강인한 회전근과 더 빠른 패들을 얻게 되겠지만, 과연 그게 옳은 방향일까? 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체력은 한계가 있는데?


서핑을 포함한 모든 보드 스포츠는 대체로 가만히 서있는 상태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힘들다. 균형잡기 힘든 이 작은 평면체는 속도를 가지면서 안정적인 상태가 되고, 우리는 이 안정감을 가진 보드 위에서 스포츠를 즐긴다. 그렇다면, 서프보드의 안정감에 관여하는 속도는 우리의 패들로 만들어지는 속도일까? 당연히 아니다. 프보드가 안정적인 형태로 움직이게끔 할 정도의 속도는 인간의 근력이 아니라 파도의 에너지에 기인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서프보드가 파도로부터 제대로 힘을 받아 파도 위를 미끄러져 갈 것인지만 예측하면 된다. 정확하게 힘을 받기 시작해 파도가 잡히기 시작하는 포인트를 제로(0) 포인트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여유 있게 -4, 또는 -6 포인트 정도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고른 파도가 제로 포인트를 지날 때쯤 나를 만나 태워갈 수 있도록 패들로 이동하면 된다. 즉, 우리가 파도를 잡기 위해 패들을 하는 것은 충분한 속도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내가 고른 파도가 잡히는 지점, 즉 제로 포인트까지 오차를 줄이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파도를 잡기 위해 패들을 하는 것은 

충분한 속도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내가 고른 파도가 잡히는 지점, 

즉 제로 포인트까지 오차를 줄이는 과정일 뿐"



파도를 잡기 위해 패들이 빨라야 할까? 이론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패들이 느리면 미리 출발하면 되고, 패들이 좋으면 좀 늦게 출발해도 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파도가 잡히는 지점을 정확히 예측하고, 내가 예측한 시점에 패들로 그 지점에 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해 보겠다. 파도를 잡으려는 시도가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은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렇다. 파도가 잡히는 지점과 내 패들의 속도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고, 해결책은 파도를 좀 더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늘면 앞서 언급한 경우와 달리, 우리는 점점 제로 포인트에 가깝게 라인업을 형성하게 되고, 패들의 횟수가 줄며, 체력을 아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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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서프보드가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하는 파도의 특정한 지점은 일정하지 않다. 우리는 서핑을 하기 위해 들어간 그날의 바다에서 항상 오늘의 제로 포인트를 찾아야한다. 파도가 잡힌다는 것은 결국 서프보드가 파도의 경사면을 중력으로 타고 내려간다는 말이므로, 결국 제로 포인트를 찾는다는 것은 어떤 각도의 경사 위에서 내 서프보드가 내려갈 수 있는지를 알아낸다는 의미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서프보드에 대한 이해가 조금 필요하다. 내 서프보드가 어느 정도의 경사에서 내려갈 수 있는지는, 그 서프보드가 수면과 맞닿아 있는 표면적에 따라 결정된다. 같은 부피라면 더 넓은 표면적, 같은 표면적이라면 너비보다는 길이 방향으로 표면적이 많이 배분된 보드가 더 완만한 경사에서 파도를 타고 내려갈 수 있다. 숏보드를 아무리 두껍고 넓게 만들어도, 그래서 롱보드의 부피를 가진다고 하여도, 롱보드와 같은 라인업에서 웨이브 캐치가 되지 않는 것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같은 부피라면 더 넓은 표면적, 

같은 표면적이라면 너비보다는 길이 방향으로 

표면적이 많이 배분된 보드가 

더 완만한 경사에서 파도를 타고 내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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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그렇다면 같은 길이와 면적을 가진 서프보드는 같은 정도의 경사면을 타고 내려갈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로커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엔트리로커라고 부르는 노즈부터 미드까지 이어지는 로커가 낮으면(작으면) 파도의 경사면이 기울어지는 시점에서 수면과 더 많은 면이 맞닿게 되어 좀 더 완만한 경사면에서 테이크오프가 가능하다. 반면에 엔트리로커가 많으면(높으면) 길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이 실제로 수면과 맞닿아 있어 그만큼 짧은 보드가 내려갈 수 있는 경사면에서 파도가 잡힌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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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을 모두 이해한다고 해도 파도를 원하는 만큼 잡아내기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당연히 우리의 몸으로 연습하고 익혀야 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강력하고 폭발적인 패들이 아니고, 파도가 우리의 몸과 서프보드를 기울여 내려보내기 수월하게끔 올바른 자세로 패들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 강력한 스트로크를 위해 팔을 앞으로 길게 뻗고, 힘이 잔뜩 들어간 양팔이 교대로 움직이면서 무너진 균형을 다리를 벌려 허벅지로 레일을 꽉 붙잡으며 패들을 한다. 이런 식의 패들은 허벅지가 잡고 있는 보드의 테일이 파도가 만들어내는 경사면에 자연스럽게 기울여지지 않도록 버티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더 많은 패들을 요구하고, 원하는 타이밍보다 늦게 파도가 잡히는 결과를 초래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파도가 안 잡히고 서핑이 잘 풀리지 않을수록 우리가 처음 배운 그대로 해보자. 기립근에 힘을 주고 상체를 세운 후 어깨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한다. 시선은 정면, 즉 노즈를 보며 좌우로 롤링이 생기지 않는지 확인한다. 다리는 가지런히 모아 서프보드의 가운데 놓고, 균형을 위해 힘을 뺀다. 이 상태로 호흡을 하며 편안하지만 정확하게 스트로크를 하는 패들을 연습해 보자.  



우리의 몸과 서프보드를 움직이는 파도의 에너지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다. 힘차고 빠르게 패들해 보겠다고 아둥바둥 해봐야 자연이 만들어내는 물의 움직임을 거스르거나 정복할 없다. 그리고 자연은, 파도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승차거부를 하지 않는 매너 좋은 택시기사님이 지나가는 길목에 적절한 위치에서 적당한 움직임을 취하는 승객을 태우듯, 파도에 싣기 좋은 형태라면 프로서퍼든, 입문자든, 물난리에 떠내려온 평상위의 돼지든 차별없이 태운다. 파도라는 자연현상에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운동능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자.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파도가 밀려오는 수평선에 집중하고파도가 언제,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깨지는지 관찰하고 분석하는 버릇을 들이자. 서핑 고인물들 사이에 '파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우리의 서핑은 7할의 파도와 3할의 기술로 이루어진다. 긴장을 풀고, 뻣뻣하게 들어간 쓸데없는 힘을 빼고, 파도에 몸을 맡겨보다 보면, 조금씩 파도에 익숙해져 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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