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서핑 영화 ‘폭풍 속으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저기 서퍼들을 봐. 저들은 하나의 종족이나 다름없어. 그들끼리 통하는 언어를 사용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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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퍼는 하나의 종족이다?!


서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낯선 용어가 등장에 했을 때, 황급히 사전을 펼치고 번역기를 돌린다고 해도 서핑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서핑 부족(?)의 대화를 해석하기란 종종 쉽지 않을 겁니다. (사실 같은 서핑이라는 스포츠를 하는 한국 서퍼와 외국 서퍼 사이에도 서로에게 낯선 서핑의 언어들도 꽤 있답니다. 그럴 때는 서핑 글리시를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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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가 준비한 것이 바로 ‘서. 핑. 정. 음’, 엣헴. 이것은 단순히 ‘핀(Fin)이란, 상어 지느러미와 같은 형태로... 방향성을 잡는 역할을 한다‘와 같이 형식적인 서핑 용어를 정리한 것이아닙니다. '서핑 정음'은 글이 아닌 경험과 소통으로 체득되어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서핑 속어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막 서핑을 시작했거나 시작할 예정인 분들에게는 서핑 할 때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좋은 꿀팁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럼 서핑 부족 사이에(한국 한정)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하나의 비결, 한국 서퍼들만의 언어생활을 지금부터 살짝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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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레이를 뿌리다? 서핑을 하고 물 밖에 나와서 버디가 흥분하며 “내 스프레이 봤어?”라는 물음에 “스프레이는 머리를 좀 더 말리고 뿌리는 게 좋아”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이 박승철급 헤어디자이너일지라도 순간 정막이 흐를 것입니다. 스프레이는 서프보드로 턴을 했을 때 핀에 의해 물이 밀려나면서 밖으로 흩뿌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주로 힘 있고 큰 반경을 그리는 턴 일수록 거대한 스프레이가 만들어집니다. 마치 공작새처럼요. 그러니 친구가 한 말의 의미는 ‘나의 멋진 턴을 감상했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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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아웃!?  이 말을 들었다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꺼지래?!'하며 버럭 성질을 낼 시간조차 없을지 모릅니다. 바로 '큰 파도가 오고 있으니 수평선 방향으로 미친 듯이 패들 하세요'라는 뜻이기 때문인데요. 오히려 아웃을 외친 사람은 당신을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노력한 고마운 은인(?)인 셈이죠(아니면 당신이 파도에 맞아 보드가 자신에게 날아올까 봐 무서워서?) 원래는 ‘패들 아웃, Paddle-out'으로 배우지만 급한 상황이니 만큼 줄여서 아웃만 말할 때가 많으니, 라인업에서 멍 때리고 있지 말고 아웃을 잘 새겨듣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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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업을 당기자!? 라인업을 잡고 떠 있는데 코치나 친구들이 ‘라인업을 좀 당겨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면, 당황하지 말고 해변 방향으로 패들을 하면 됩니다. 아웃과 반대의 개념이죠. 이안류에 의해 먼바다로 떠내려가거나, 세트 파도가 무서워 바다 멀리 나가있으면 파도를 잡기가 어렵기도 하고, 파도는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에 종종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라인업을 조절해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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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저분하다? 이 말을 듣고 ‘역시 요즘은 해양 쓰레기가 문제야’라고 생각하셨나요? 파도가 지저분하다는 말은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 면이 짜글짜글하여 서핑하기 좋지 않다는 뜻. 해외에서는 차피(choppy)하다고 하며 국내 서퍼들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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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서? 지저분한 파도를 피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새서'를 가는 것인데요. 새서는 ‘새벽 서핑’의 줄임말입니다. 보통 새벽시간대에는 지표면이 식으면서 기류가 발생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바람이 불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 그만큼 깨끗한 파도 면을 기대할 수 있어서 서퍼들은 새벽에 들어오는 파도를 노리는 경우가 많죠. 평소 늦잠꾸러기지만 파도 좋은 날 서핑 때문에 일찍 일어나는 서퍼들 꽤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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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oodi


다대뽕? 이것은 트로트 다음으로 대한민국이 서퍼들에게 허락한 유일한 마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 남스웰이 들어올 때 피리어드와 바람, 모든 것의 조합이 짝짜꿍짝짜꿍 잘 맞으면 해외 서퍼들도 놀랄만한 엄청난 길이의 라이트 핸드 파도가 들어옵니다. 웨이브파크도 부럽지 않은 이 황홀한 파도를 탔을 때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며 행복 치사량이 초과하게 되는데 이것을 다대‘뽕’맞았다고 합니다. 필자도 재작년에 한 번 다대뽕을 맞았는데, 올해도 과연 다대뽕의 기회가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설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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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치대첩? ‘행주대첩’, ‘한산도 대첩’도 아니고, ‘솔로대첩’도 아닌 서퍼들만의 대첩인 ‘물치대첩’. 크게 승리한다는 ‘대첩’의 본뜻과는 달리 같은 뜻과 목표를 품고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요즘은 대첩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양양의 물치해변은 파도가 큰 날 서퍼들이 찾는 서핑스팟으로 유명합니다. 파도가 크더라도 천천히 길을 내며 깨지는 파도로 입문부터 상급자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서핑스팟이죠. 그렇기 때문에 물치해변에 좋은 파도가 들어오면 전국의 서퍼들이 모여들어 물 반 서퍼반의 어마어마한 광경이 펼쳐지는데 이것을 ‘물치대첩’이라고 합니다. 파도를 타는 것보다 서퍼들을 피하느라 바쁜 경우가 많고 그만큼 위험하기도 해서 대첩에 참전하는 것이 마뜩잖지만, 또 그럴만한 아름다운 파도를 본다면 불빛을 만난 나방처럼 거부할 수 없이 달려들게 돼 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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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동산?(꿀파도?) 과자의 고전 ‘맛동산’은 양양의 ‘동산해변’에 좋은 파도가 왔을 때 서퍼들이 그날의 컨디션을 부르는 말입니다. '오늘 완전 맛동산이었어' 이런 식. 파도가 좋은 것을 서퍼들은 ‘꿀파도’라고 얘기하는데요. 애초에 '맛'과 '동산'은 국민 짝꿍이었는데다, 마침 '동산'해변에 ‘꿀’처럼 ‘맛’있는 파도가 와버렸으니 의식의 흐름을 따라 ‘맛동산’이 탄생된 것이죠. 실제로 서핑 후에 맛동산을 먹으면 꿀맛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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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섶안섶? 구어보다는 주로 카톡이나 카페 글에 남겨지는 문어체로 많이 사용됩니다. ‘즐겁게 서핑하고, 안전하게 서핑하세요!’의 줄임말로 서퍼들에게는 ‘나중에 밥 한 번 먹자’격의 작별 인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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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한국서퍼들의 보드 사이즈 읽는 방법’ 

누군가가 ‘보드 사이즈가 몇?’이라고 물었을 때 ‘나인,식스(9’6“)’ 또는 ‘육,사(6’4“)’ 이런 식으로 영어든 한국어든 하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이즈가 있을 것입니다. 반면, ‘오,텐’, ‘오,일레븐’과 같이 한국어와 영어를 짬뽕해서 말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것은 종종 허세처럼 들릴 수 있으나 사실 이렇게 읽는 이유가 있습니다. 서퍼들이 서프보드의 사이즈를 말할 때 단위를 빼고 읽는 것이 익숙한데 단위를 빼고 한글로만 말했을 때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5’10”)', 또는 ', 십일(5’11“)'이라고 말한다면 숫자 '오(50)', '오십일(51)' 헷갈릴 있겠죠. 뒷자리만 영어로 바꾸어 얘기하는 것은 허세가 아닌 센스였다는 ! 한국서퍼라면 모름지기 사이즈의 뒷자리를 얘기할 십일 한글로 말하기, 잊지 마세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서핑정음 어떤 것이 있나요? 맛동산과 다대뽕이 넘치는 한해가 바라면서, 그럼 안섶즐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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