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많이 분다. 낮게 뜬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강렬한 태양이 그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오늘은 아주 커다랗고 까만 새가 유유히 구름 사이를 날아다녔다.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나를 보며 옆에 있던 서퍼가 사실 그건 연이라고 알려 주었다. 발리 사람들은 연을 날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너무 높이 날리는 바람에 비행기와 부딪히는 사고도 있었다. 하늘에 끝이 존재한다면 그들의 연은 그곳에 바싹 붙어 유영할 것이다. 얼마 전 스노클링을 하다 마주친 가오리가 떠오른다. 고요하고 우아하게 모래 바닥을 미끄러지듯 다니는 모습이 저 높은 하늘의 연과 다를 것 없었다. 발리는 하늘 높은 곳부터 바다 깊은 곳까지 여유롭구나.
요즘처럼 파도가 작은 날엔 라인업에서 인스트럭터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한국어, 영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까지 알고 있는 모든 언어를 총동원하며 서로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찾아낸다. 며칠 전엔 ‘안가’의 얼굴이 텔레토비를 닮았다며 ‘이라완’이 놀렸다. 텔레토비를 아냐는 질문에 일요일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텔레토비 혹은 파워레인저, 티몬과 품바를 보며 자라났다고 답한다. 너무 기뻐 ‘사야 주가!’(나도!)를 외쳤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4,809 km란 거리와 20년이란 시간차가 있지만 같은 추억을 지니고 있었다. 서핑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도 닮은 부분이 많다는 사실은 바다에서의 우리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준다. 정말이지 국적, 나이, 성별 이 모든 건 친구가 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라돌이는 팅키윙키, 뚜비는 딥시, 나나는 랄라, 뽀는 뽀~ ‘안가’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마무리도 같 다. 뜨만~ 헬로~ (친구들~ 안녕~)
난 평소에도 파도를 기다리는 동안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텔레토비 노래가 금방 끝나자 아쉬워 The Lazy Song의 한 소절을 흥얼거렸다. “Today I don’t feel like doing anything(난 오늘 아무것 도 하고 싶지 않아)” 텔레토비를 닮은 ‘안가’가 그 뒤를 따라 부른다 “I just wanna lay in my bed(그 냥 내 침대에 눕고 싶어)” 그리고 합창이 이어진다. “Don’t feel like picking up my phone, so leave a message at the tone. Cause today I swear I’m not doing anything(핸드폰 집어 들기도 귀찮으니 메시지를 남겨줘. 왜냐면 오늘 진짜 아무것도 안할 거거든” 해가 떠오르는 발리의 아침 바다에서 부르기 딱 좋은 노래다.
내가 떠있는 꾸따는 서쪽 해변이라 바다 쪽을 바라보면 구름이 파스텔 빛으로 물들어 있고 해변 쪽을 바라보면 강렬한 태양이 붉은 벽돌 지붕과 야자나무 뒤로 불타오른다. 해가 떠오르거나 저물 때 하늘의 색을 유심히 살펴보면 아주 익숙한 순서로 물들어 있단 걸 알 수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하루 두 번 우리의 머리 위로 아주 거대한 무지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럴 땐 The lazy song의 가사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멍하니 바라만 봐도 무언가 가슴 안에 채워지는 묘한 충만함이 찾아온다. 발리에선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열 배 스무 배 넘는 횟수로 하늘을 본다. 매일 날씨가 좋은 이 곳에서 자꾸만 ‘오늘 날씨가 참 좋네’라고 말한다. 하늘에 연이 있고 바다 속에 가오리가 있다면 그 중간엔 파도를 기다리며 하늘을 구경하는 서퍼가 있다.
사진 : 현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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