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서프보드를 팔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첫 보드를 사러 오는 초심자도 있었고, 나보다 경험이 많은 대선배도 있었지만, 공통점은 그 순간, 그들의 눈이 기대감과 행복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마치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처럼, 누군가가 밟은 흔적, 즉 프레셔*가 전혀 없는 근사한 새 서프보드를 산다는 것은 서핑을 하는 사람이라면 생각만해도 흥분되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흥분과 설렘의 크기만큼 알 수 없는 걱정과 막막함을 느껴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맞는 서프보드를 고른다는 것은 카달로그에 제원과 성능이 수치로 비교되어 있는 자동차를 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막함을 안겨준다. 태생부터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이 ‘서프보드의 성능’이라는 것은 결국 ‘서프보드가 나에게 주는 재미’라는 표현으로 치환될 수 있고, 이 재미는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원하는 서프보드의 실체에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막막하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부터 원하는 서프보드를 찾고자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팁을 몇 가지 알려주겠다.
가장 먼저 ‘내가 원하는 서프보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떤 서프보드를 원하는지 특정할 수 없다면 아직 새 서프보드를 사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 잘 맞는 서프보드를 구매하기 위해 가장 처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며, 어쩌면 제일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보다 서핑을 오래했거나, 잘하는 지인에게 미루어서는 안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다. 새로 사게 될 서프보드에 기대하는 점을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된다. “패들이 쉬웠으면 좋겠다”, “턴이 좀 더 쉬웠으면 좋겠다” 등과 같이 입문 초기에 고민할 법한 부분들도 좋고, “피벗턴 뿐만 아니라 카빙도 가능했으면 좋겠다”, “아직 포켓으로 충분히 들어가지 못하니 숄더에서 노즈라이딩이 쉬웠으면 좋겠다” 등 중급자의 고민도 좋다. 이런 고민들을 나열해보면 결국 지금 원하는 서프보드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다음 단계는 머리속에 그려진 서프보드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이 단계를 위해 우리가 전제하고 이해해야 할 명제는 ‘세상에 완벽한 서프보드는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신은 패들도 편하고, 파도도 잘 잡히며, 턴이 잘되는 동시에 노즈라이딩도 안정적인 서프보드를 원하겠지만, 세상에 그런 보드는 없다는 사실을 힘들더라도 빨리 받아들이고 그 사이 어떤 지점에서 타협을 하여야 한다. 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요소를 몇 가지 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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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들>
Pexels에서 Jess Loiterton님의 사진
패들이 유리한 디자인을 찾고자 한다면 크게 두가지만 일단 확인해보자. 첫번째, 레일이 다운레일(로우레일)인지, 두번째 와이드포인트(서프보드의 가장 넓은 지점)가 엎드렸을 때 가슴위치 아래 정도에 있는지가 바로 그것이다. 물은 평면보다 곡면을 더 잘 감싼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다운레일은 곡면이 많은 50/50레일보다 보드를 덜 감싸게 되고, 그만큼 저항을 줄여 패들을 쉽게 한다. 같은 원리로 물위를 움직이는 속도도 더 빨라, 속도를 기반으로 한 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퍼포먼스 지향의 서프보드, 큰 파도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하는 건보드 등에서 많이 사용한다.
반면, 클래식 로거들이 사랑하는 부드러운 트림의 느낌이나, 안정감은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와이드포인트 역시 보드 길이의 절반지점, 즉 제로포인트에서 노즈쪽으로 당겨졌을 때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장점이 많지만, 필연적으로 노즈 쪽 볼륨이 많은 디자인이 될 확률이 높고, 이는 노즈의 부피가 적고 가벼운 형태에 비해 방향 전환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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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
보드의 매뉴버, 즉 각종 턴이 얼마나 수월하게 되는지 알고 싶을 때에도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요소가 있다. 테일의 레일에 엣지*가 있는지, 그리고 테일의 로커*가 많은 지 확인해보자. 테일의 아웃라인 역시, 넓은 테일보다는 핀테일 등 면적이 작은 테일이 턴이 쉽다. 테일의 엣지는 물이 보드의 테일을 감싸기 힘든 형태를 만들어 주어 턴을 좀 더 가볍게 만들어주며, 높은 테일의 로커는 보드가 회전하기 좋은 궤적을 만들어준다. 작은 면적의 테일 역시, 보드의 방향이 전환되는 시점에 물에 잠겨 있는 면적을 줄여 더 간결한 턴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테일의 엣지가 물이 감싸지 못하게 한다는 같은 이유로, 노즈에서의 안정감을 저하시키고, 테일의 로커 역시 보드의 속도를 희생시킨다. 좁은 테일의 면적은 작고 힘이 부족한 파도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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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먼저 노즈라이딩*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서프보드를 그려보는데 도움이 되겠다. 노즈라이딩은 서퍼의 균형감각이나 민첩성에 의존하는 기술이 아니고, 간단히 말하면 노즈와 테일의 시소게임이라 할 수 있다. 노즈에 올라선 서퍼의 체중으로도 노즈가 가라앉지 않을 만큼의 물이 반대쪽, 즉 테일위에 올라타며 감싸 쥐고 있어야한다.
일반적으로 노즈는 서퍼의 체중을 떠받칠 수 있도록 부력이 크면 유리하다. 넓고, 두껍고, 컨케이브*가 깊으면, 테일에 올라간 물의 양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즉 파도의 숄더에서도 노즈라이딩이 가능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넓고 무거운 노즈는 포켓**에서의 노즈라이딩에는 오히려 방해요소가 된다. 크리티컬 포인트**에 가까워질수록 파도의 경사면이 더 가팔라지는데 이때 노즈의 레일이 파도의 페이스*에 닿거나 심지어 깊숙히 들어가버리게 되면, 보드가 뒤집어지거나, 반대로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컨케이브 역시 너무 깊으면 보드아래 흐르는 물의 흐름이 컨케이브가 끝나는 지점에서 막히거나 부딪혀 속도를 저하시킬 수 있어 말랑하거나 에너지가 끊임없이 제공되지 않는 파도에서는 라이딩을 이어 나가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테일은 물이 레일을 잘 감쌀 수 있도록 엣지가 없는 50/50 레일에 어느정도 로커가 많이 들어가 물이 올라타기 쉬운 모양으로 디자인된 것이 좋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테일로커는 속도를 담보로 조작성을 강화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적당한 정도의 테일로커를 찾는 것이 좋다.
Pexels에서 Jess Loiterton님의 사진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서프보드를 구성하는 각 요소는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셰이퍼*는 머리속에 있는 컨셉을 구현할 때 자신의 의도에 맞게끔 균형을 잡게 된다. 이 균형감각이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해서 훌륭한 셰이퍼와 그렇지 못한 셰이퍼를 나누는 기준이 될 수도 있고, 셰이퍼와 일반인의 차이가 될 수도 있다. 즉 셰이퍼가 아닌 이상 보통의 소비자가 너무나도 복잡한 서프보드의 모든 요소를 결정하고 보드를 사러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우리는 ‘내가 원하는 서프보드’의 균형을 셰이퍼에게 전적으로 맡겨 놓아도 괜찮을까? 역설적이게도, 활동하고 있는 셰이퍼의 수가 월등히 많은 미국이나 호주보다, 오히려 국내에서 소비자가 완성도가 떨어지는 서프보드를 구매하게 될 위험이 더 적다. 좋은 물건은 한눈에 알아보는 한국인의 DNA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사가 오래되었거나 이미 해외시장에서 검증된 레전더리 브랜드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이렇게 잘 만들어진 서프보드를 기준 삼아 오랜 시간 실력을 가다듬어 온 국내셰이퍼의 서프보드 역시 어설픈 캘리포니아나 호주 태생의 그것들보다 월등한 품질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브랜드에 매몰되지 않고 어떤 브랜드, 어떤 모델의 밸런스가 나와 잘 맞는지 각자의 기준으로 냉정하게 결정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서프보드’를 찾는 과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서프보드를 판매하는 판매자가 유용한 정보를 충분히 줄 수 있기 때문에 서프보드 이론을 부담을 느낄 만큼 공부하고 갈 필요는 없다. 그래도 ‘아는 형이 9’6”타면 된다고 했어요’, ‘보드는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결국 제가 문제죠’ 와 같은 태도는 나에게 맞는 서프보드를 구매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잘타는 형, 오빠도 보드의 이론에 대해서는 나와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빨리 깨닫길 바란다. 나만의 서프보드를 찾는 과정은 용하다는 아기보살에게 복비를 가져다 바치는 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아무리 해박하고 친절한 셰이퍼나 판매자라도 소비자가 어떤 보드를 꿈꾸고 있는지 듣지 않고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내가 찾고 싶은 보드가 어떤 것인지 구체화시키고, 타고 싶은 서핑 스타일을 영상에서 찾아보며 점점 실체와 가까워져야 한다. 판매자가 작두를 타는 것이 아니라, 상담을 할 수 있도록 ‘내가 원하는 서프보드’에 대해 즐거운 마음으로 고민해본다면 분명 나의 서핑을 더 즐겁고, 더 발전시켜줄 ‘꿈의 서프보드’를 만나게 될 것이다.
*프레셔 프레셔딩, 보드의 표면이 눌려 움푹 들어간 데미지
*엣지 레일의 아랫 부분이 각지게 마무리된 모양
*로커 서프보드를 옆에서 보았을 때 보드가 휜 모양
*노즈라이딩 서프보드의 노즈(앞부분)을 이용하여 라이딩하는 클래식한 기술
*컨케이브 서프보드의 아랫면이 오목하게 들어가 물의 흐름을 조절하도록 만든 모양
*포켓&크리티컬포인트 파도가 깨지기 전 날카롭게 선 곳으로 파도의 힘이 가장 강한 부분
*페이스 깨지지 않은 파도의 면
*셰이퍼 서프보드를 가공•제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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